
자선사업과 음악의 사회성
<메시아>의 초연은 들뜬 런던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더블린의 뮤직홀에서 열렸다. 더블린의 청중은 잔뜩 기대감에 차 있었고, 음악계는 헨델을 지지했다. 런던에서 온 여성 독창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지역의 연주자들과 더블린 대성당 성가대의 가수들이 동원되었다. 아마추어 음악가들도 합류했다. 오케스트라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바이올린 열넷, 비올라 여섯, 첼로 셋, 더블베이스 둘, 오보에 넷, 바순 넷, 호른 넷, 트럼펫 둘과 팀파니. 지역 언론의 멋진 소개 덕에 1742년 4월 13일 초연에는 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숙녀들에게는 치마를 부풀리는 후프를 입지 말고 신사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검을 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700명에 달하는 청중은 이 작품의 ‘숭고함, 웅장함, 부드러움’에 열광하고 위엄과 단순함, 장대함과 자연스러움의 독특한 조합에 매료되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종교 음악을 세속적인 연주회장에서 선보이는 것에 의아해 했다. 헨델이 음악회 수익금을 세 개의 자선 단체 -재소자 구제협회, 자선 구호소, 머서 병원-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덕분에 비평가들은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이는 초연에 국한된 것이었고, 두 번째 공연의 수익은 작곡가에게 돌아갔다. 헨델은 이처럼 부분적인 자선 공연을 런던에서도 계속할 생각이었다. 런던에서는 더블린에서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청교도들의 적대감 때문이었다. 오라토리오는 1750년에야 비로소 런던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5월 1일, 파운들링 병원에서 예배당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메시아>가 공연되었다. 그곳의 오르간은 헨델이 기증한 것이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예배에서는 아니었으나 교회 안에서 울려 퍼졌는데, 이번 연주의 목적도 자선이었다. 고아들을 위한 음악회였다. 마침내 이 작품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게 되었고, 이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 음악회를 계기로 고아원을 위해 열리는 <메시아>의 연례 자선 공연 전통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파운들링 병원

런던 홀본 파운들링 병원: 안뜰 조감도. 열쇠 번호가 매겨져 있음. LP 보이타드(Boitard)의 1753년 채색 판화. 도상 컬렉션 키워드: 루이 피에르 보이타드; 테오도르 야콥센; 파운들링 병원(런던)
자선과 종교 음악의 결합이 즉흥적으로 생겨난 마케팅 전략은 아니었다. 영국 음악계에서 그 전통은 상당히 길었을 뿐 아니라 헨델도 관심이 많았다.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의 불행한 상황을 생각해 보라. 상류층은 중심부와 부유한 지역에서 편안하게 살았지만, 대다수 시민은 광활한 빈민가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특히 가난 때문에 버려져 고아가 된 아이들의 처지는 정말 딱했다. 국가와 국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고, 결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헨델도 개인 기부와 지속적인 오라토리오 공연으로 힘을 보탰다.
헨델은 자신이 한 행위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원칙이 존재하는데, 그 둘은 서로 분리된 듯 보이지만 실은 하나이다. 마치 언젠가 깨질 공의 반쪽처럼 말이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선함, 미학과 윤리, 예술과 도덕, 교회음악과 자선사업이다. 이 둘의 결합으로 진실하고 근본적인 기독교 신앙이 탄생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칸타타에서 이러한 관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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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흐는 여기서 실질적인 결론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윤리적 측면을 자선사업에 떠넘긴 채 자신은 예술에만 전념하는 다른 교회음악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헨델의 종교음악은 그 자체로 실천적인 사랑의 행위가 되었다. 여기에도 양면성은 존재하는데,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득을 본 상류계층이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애는 자기애의 도구로 쉽라리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양상은 이미 헨델 시대부터 존재했고, 자선음악회가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은 지금은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요한 힌리히 클라우센, 홍은정 옮김 <신을 위한 음악> p.274~277
느낀점
음악가와 자선사업가의 일을 헨델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음악 <메시아>가 고아원에서 전통이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음악은 바흐의 그늘에 갇혀서 많은 빛을 못 보고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자선사업에 대한 행동은 확실히 바흐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이 하시겠지만(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도 보실 수 있기에(시 17:3))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잇겠다. 그의 음악은 마치 독일에서 영국으로 가 고아원 사업을 한 ‘죠지뮬러’와 도 닮아 있어서 조금 흥미로운 비교점이 된다.